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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 1.4m의 ‘얇디 얇은 집’은 어떻게 태어났나
서울의 얇은 집 60곳 모아 ‘땅은 잘못 없다’ 펴낸 건축가 신민재
윤상진 기자 / 입력 2022.10.31 03:00
좌우 폭 1.4m. 초등학생 한 명이 겨우 누울 수 있을 만한 너비의 얇은 건물을 짓는 건축가가 있다. 2018년 가장 넓은 곳의 너비가 2m 남짓인 서울 서초구 잠원동 ‘조각 땅’에 젓가락처럼 가는 4층 집을 지은 신민재(46) 에이앤엘스튜디오(AnLstudio) 소장. 2016년 문화체육관광부 ‘젊은 건축가상’을 받은 신 소장은 정부가 녹지를 조성하고 남긴 자투리 땅에 지은 ‘얇디얇은 집’으로 2019년 서울시건축상을 받았다.
기예에 가까운 집을 짓고 나니, 얇게 지어질 수밖에 없었던 건물들의 사연이 궁금해진 건축가는 전국 곳곳 깡마른 건물들을 찾아다니기 시작했다. “얇은 집에는 도시의 역사가 새겨져 있어요. 이 건물들이 탄생한 사연을 찾아가다 보면, 도시가 어떻게 개발됐는지가 보이죠.” 자신의 소셜 미디어를 통해 제보를 받아 전국 곳곳 얇은 집을 찾아다닌 신 소장은 최근 서울의 얇은 집 60여 개를 모아 소개한 책 ‘땅은 잘못 없다’를 펴냈다. 건축물대장·지적도·토지대장 등을 확인하며 얄따란 건물들의 탄생기를 풀어낸 그를 만나 건물에 담긴 도시 이야기를 들었다.
얇은 건물이 생기는 이유는 다양하다. 기존 도로가 확장되거나, 터널, 다리 등 토목시설이 생기거나, 도시 재개발 과정에서 건물이 들어설 필지(토지 구획 단위)가 이리저리 잘리며 ‘조각 땅’이 탄생하면서다. 서울 종로구 율곡로(이화동)를 걷다 보면 뉴욕 브로드웨이의 ‘플랫 아이언(Flatiron·다리미 모양의 건물)’ 빌딩을 연상케 하는 좁고 긴 삼각형 형태의 건물들이 눈에 띈다. 이는 1981년 완성된 곡선형 율곡로가 도로변의 필지를 삼각형으로 잘랐기 때문이다. 서울 용산구 경리단길 초입에 보이는 작은 ‘조각케이크’ 모양 건물은 1960년대 이곳에 들어선 육군중앙경리단으로 인해 주변 땅들이 날카롭게 잘린 탓이다. “얇은 집엔 주변 환경이 언제 어떻게 조성됐는지 보여주는 ‘지역성’이 녹아 있죠.”
역동적인 개발 과정을 거친 한국의 구도심 곳곳엔 얇은 땅이 많이 남아있지만, 해외만큼 이 땅들을 잘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신 소장의 말이다. “미국은 얇은 땅을 상업적으로 활용하고 있죠. 도로가 Y자로 갈라지며 생긴 자투리땅에 세계에서 가장 비싼 광고판인 ‘타임스 스퀘어’를 세운 것처럼요. 일본은 건축가 아즈마 다카미쓰의 ‘타워 하우스’처럼 얇은 땅을 주거 용도로 활용하고 있고, 유럽에선 얇은 땅에 카페 등이 들어서며 생활권의 중심 공간이 되는 경우가 많아요.”
얇은 땅을 대하는 태도는 도시의 다양성과도 관련된다는 말. “그에 반해 우리는 넓은 이형(異形)땅이 있으면 그 안에 정방형 모양의 반듯한 건물만 짓고, 나머지 땅은 녹지 공간으로 꾸며 비워두는 경우가 많아요. 그만큼 우리 도시엔 비슷한 모양의 건물들이 많은 거죠.” 뾰족한 모서리 땅을 계단실이나 창고 등으로 디자인해 설계한다면, 건물의 활용도뿐 아니라 도시의 개성 또한 증가할 수 있다는 것이 신 소장의 생각이다.
‘얇은 집 탐사가’지만, 그는 무작정 얇은 건물을 예찬하지 않는다. 그가 주목하는 것은 얇은 공간의 한계 속에서 찾을 수 있는 생활의 의미다. “얇은 건물은 분명 면적 측면에선 경쟁력이 떨어지죠. 하지만 자신의 개인 공간에서 무엇을 추구할 것인가에 따라서, 얇은 건물은 폭은 좁지만 오히려 더 넓은 공간이 될 수 있어요. 대표적으로 전망 측면에선 얇은 집이 유리한 부분이 있죠. 카페 같은 상업 공간에선 이 점을 강점으로 살릴 수 있기도 하고요. 얇은 집을 짓는 데 있어 중요한 것은, ‘땅의 특징을 어떻게 살릴 것인지’라고 생각합니다.”
그의 바람은 얇은 공간에 독특한 건물을 짓는 시도가 더 많아졌으면 하는 것. “얇은 땅은 주로 도심 주요지에 위치하는데, 계속 버려져 있으면 안전이나 지역 활성화에 방해가 돼요. 그 작은 땅들이 특색 있는 설계를 만나 역할을 찾게 되면, 지역은 활성화되고 도시는 개성을 갖게 되죠. 이 책은 이형 땅의 토지주들, 그리고 건축가들에게 얇은 땅을 활용할 수 있다는 용기를 주고 싶어서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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