ㆍ‘현대판 소작료’ 집세에 허덕
ㆍ30년간 임금 6배 오를 동안 강남 집값 상승분은 그 43배
결혼을 계획하고 있는 직장인 ㄱ씨(30·여·서울 동작구 상도동)는 5일 “둘이 저축해 신혼집을 마련하고 아이까지 낳을 생각을 하면 까마득하다”고 말했다. 한 달에 150만원을 버는 그는 현재 월급의 약 33%인 50만원을 월세(보증금 500만원)로 내고 있다. 방값에 전기료·수도료·식비·교통비·휴대폰 요금 등을 내고 나면 저축할 돈은 별로 남지 않을 때가 많다. 그는 “요즘은 둘이 절약해서 결혼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양가 부모님께 손을 벌려야만 출퇴근 가능한 경기도에 전셋집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가수 이랑씨는 지난달 28일 제14회 한국대중음악상(KMA) 시상식에서 ‘최우수 포크 노래상’ 트로피를 즉석 경매에 부쳤다. 월세를 마련하기 위해서라고 했다. “2월 수입이 96만원”이라는 이씨에게 트로피 경매 수입(50만원)을 더해도 34% 이상이 월세 몫이다. 이씨의 깜짝 퍼포먼스는 요즈음 젊은층의 주거비 부담 실태를 극적으로 드러냈다.
이런 저당 잡힌 젊은 인생들 뒤에 임대인은 ‘늑대의 얼굴’만 하고 있을까. 임대인의 적잖은 수는 그저 ‘평범한’ 월급쟁이다. 은행 빚을 내서라도 전세보증금을 끼고 ‘갭투자’에 나선 이들이 적잖다. 요즘 임금노동자들이 불안한 자영업 대신 노후 대비용으로 집이나 상가 2~3채를 가지고 임대소득을 거두는 게 꿈인 세상이 됐다. 어쩌다가 2017년 대한민국 사회는 이렇게 전락해버렸을까.
지난 30년 동안 임금이 6배 오르는 동안 아파트값 상승액으로 대표되는 ‘불로소득’은 임금 상승치의 43배로 뛰었다. 30년 땀의 대가가 2400만원 늘었을 때 서울 강남 집값은 10억원 넘게 올랐다. 구조조정, 명예퇴직으로 밀려나 자영업에 뛰어든 이들의 숨통을 죄는 건 단지 옆 가게들만이 아니다. 바로 월 200만~300만원을 호가하는 임대료다. 이런 ‘현대판 소작료’ 탓에 장사가 되는데도 문 닫는 곳이 늘고 있다.
경제가 성장하면 살림살이가 나아질 것 같았으나 정작 늘어난 건 부동산 자산가치였다. 지금처럼 1% 프로선수(자산가) 쪽에만 유리하게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뛰어야 하는 아마추어(무주택자)가 처한 상황은 바꿀 필요가 있다.
‘1500만 촛불’의 원동력은 박근혜 정부에 대한 분노만이 아니다. 그 근저에는 새로운 세상을 향한 요구가 있다. 수년째 화두인 저출산 문제의 바탕에도 임금·교육비·주거비가 깔려 있다. 서순탁 서울시립대 도시행정학과 교수는 “지나친 부동산 쏠림 현상을 바로잡고 주거비 부담을 덜어 사회의 역동성을 키워달라는 요구가 촛불집회로 드러난 민심의 중요한 단면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어떻게 하면 불로소득 ‘거품’을 걷어내고 생산적 경제로 돌려놓을 수 있을까. 경향신문이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에 의뢰해 ‘지주의 나라’로 굳어가는 한국 사회의 근원을 파헤치고 대안을 모색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