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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운=준비+기회

[김포의 역사를 찾아서19] 강 너머, 바다 너머 여기도 김포다 본문

서울 및 수도권/수도권

[김포의 역사를 찾아서19] 강 너머, 바다 너머 여기도 김포다

네잎클로버♡행운 2023. 8. 28. 1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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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포의 역사를 찾아서19] 강 너머, 바다 너머 여기도 김포다.

기자명 황인문 시민 기자  / 입력 2023.08.22 20:12

김포 섬 이야기

김포는 반도다.

강과 바다로 둘러싸였다.

김포 둘레길을 따라 걷다 보면 해가 뜨고 질 때, 시시각각 색을 달리하는 섬과 마주친다.

고촌에서 월곶까지 백마도, 홍도, 독도가 이어지고 강과 바다가 만나는 가운데 유도가 버티고 있다.

대곶 평화누리길을 지나다 보면 바다 위로 살짝 머리를 드러낸 부래도를 만난다.

발길이 닿지 않아 미지의 영역처럼 보이는 섬들이 궁금하다. 과거는 지금과 사뭇 달랐다.

6.25전쟁 전에는 사람이 살고, 농사도 지었다. 서울로, 바다로 오가는 배들이 잠시 노를 멈추고 쉬어가기도 했다.

한강하구에서 서해까지 강물에 쓸리고 바람을 견뎌내며 묵묵히 버텨왔을 섬들을 만나보자.

말을 길렀던 첫 섬 | 백마도(白馬島)

김포 시작점인 신곡리에 위치한 면적 0.1㎢의 작은 섬이다.

강물에 쓸려 내려온 흙과 모래가 쌓여 섬이 만들어졌다.

섬의 남단으로 김포대교가 지나며, 신곡수중보로 육지와 연결됐다.

석양에 물든 갈대숲이 유난히 아름다운 섬이다.

흰꼬리수리가 해마다 찾아오고 다양한 새들이 수변 공간에 서식한다.

옛 문헌에는 박말도(朴抹島)로 표기됐다.

조선시대 궁중의 마필이나 목장을 관리하던 기관인 사복시(司僕寺)가 있었던 것으로 보아 이 섬에서 말을 길렀던 것으로 추측된다.

1970년 남북 긴장이 고조되면서 군사지역으로 설정되어 50년 넘도록 민간인 출입이 통제되고 있다.

▲홍도평

놀이터의 추억 | 홍도(鴻島)

일제강점기 간척사업으로 육지가 되었지만 고촌 향산리, 걸포동, 북변동 3개 지역을 아우르는 홍도는 여의도보다 넓은 섬이었다.

큰기러기 ‘홍(鴻)’을 섬 이름에 붙일 정도로 먼 옛날부터 기러기의 땅이었다.

기러기가 섬에 내려앉는 모습은 ‘홍도낙안(鴻島落雁)’이라 불리며 김포팔경 중 하나로 사랑받았다.

무분별한 농지매립으로 개체수가 크게 줄었지만 천연기념물로 보호받고 있는 재두루미가 겨울을 보내는 곳이다.

옛 사람들에게 홍도와 주변 하천은 추억의 놀이터였다.

개흙을 몸에 바르고, 띠풀의 어린 새순인 삘기를 뽑아 먹었다.

물고기, 참게, 메뚜기, 잠자리, 쇠똥구리, 개구리 따위는 흔한 먹거리이자 장난감이었다.

짚단을 태워 콩을 구워 먹고, 이삭을 주워 튀겨먹었다.

요즘 같은 가을이 정취를 맛보기 제격이다.

세월이 흘러 환경은 변했지만 붉은 노을과 갈대, 기러기는 여전히 아름답다.

▲독도

희생당한 외로운 섬 | 독도(獨島)

한반도 최동단 ‘독도’와 똑같은 이름을 가진 섬이 한강에 있다.

김포에서 일산방향 대교를 넘다보면 오른쪽에 보이는 작은 바위섬, 독도다.

물이 찰 때는 바위 위에 군 초소만 살짝 보이지만 물이 빠질 땐 꽤 넓은 펄이 모습을 드러낸다.

보잘 것 없어 보이지만 예전엔 40호의 농가가 있었고 한강을 왕래하는 배들이 정박하는 포구가 있었을 정도로 큰 섬이었다.

일제강점기 이곳의 돌을 옮겨 한강변에 둑을 쌓았다.

고촌 전호리에서 운양동 샘재까지 이어진 제방이니, 얼마나 많은 모래와 자갈이 옮겨졌을지 짐작된다. 평야를 위해 몸집이 작아진 희생의 섬이다.

당시 노역에 동원된 주민들에게도 고된 기억으로 남아 있다.

조선시대 지도책인 팔도군현지도에는 ‘고도(孤島)’라고 표기됐다.

독도 역시 홍도처럼 특별한 의미가 부여됐다.

‘독도노화(獨島蘆花)’. 독도에 흔들리며 피는 갈대꽃, 역시 김포팔경으로 꼽힌다.

남으로 흐르고 흐른 한강물이 독도에서 잠시 쉼을 청하니 이는 갈대꽃의 유혹 때문이었다.

▲유도

생명이 머무는 끝섬 | 유도(留島)  

한강의 끝자락에서 임진강과 예성강의 물줄기가 하나로 모이는 조강, 그 가운데 떠 있는 작은 무인도. 월곶면 보구곶리 산 1번지. 유도는 18만 평방미터로 축구장의 3배 정도다.

육지에서 500미터 정도 떨어져 있는 이 섬은 까마득한 옛날 홍수에 떠내려 오다가 이 곳에 머물렀다는 전설에 연유해 ‘머물은섬’, ‘머무르섬’으로 불리기도 했다.

바다와 맞닿은 기수역으로 강물에 떠내려온 다양한 생물들이 머물고 새들이 쉬어가는 섬이다.

뱀과 백로가 유난히 많아 ‘뱀섬’, ‘학섬’으로도 일컬어졌다.

지금은 천연기념물 저어새와 가마우지가 섬의 주인이 됐다.

지난 1996년엔 북녘으로부터 떠내려 온 황소가 이 섬에 고립돼 군이 구출작전을 펴기도 했다.

6.25 전쟁 후 사람이 살 수 없게 됐지만 예전 세 농가가 3천여 평 농사를 지으며 살았다.

물과 육지가, 강과 바다가, 생명과 평화가 만나고 머무르는 섬이다.

▲부래도

강에서 바다로 온 섬 | 부래도(浮來島)

대명항 평화누리길을 따라 걷다보면 덕포마을을 지나게 되는데 마을 앞 바다에서 만나는 작은 무인도가 바로 부래도(浮來島)다.

부래도는 「신증동국여지승람」에 그 유래가 등장한다.

「해동지도」에서는 동진현의 남쪽에 자리하고 있는 섬으로 표기되었다.

「통진읍지」는 ‘현의 남쪽 23리 지점에 위치한 항무이도(抗無耳島)는 둘레가 4리’라고 기록하고 있다.

그렇게 시대를 달리하며 항무이도, 부락산, 부렴산, 부렴섬이라 불렸다. 뜰 부(浮), 올 래(來). 말 그대로 떠내려온 섬이다.

래 한강에 있었는데 강화와 통진 사이를 흐르는 염하를 따라 떠내려 왔다는 설화가 이 섬의 이름을 설명한다. 섬 안의 산에는 성터도 남아 있다고 한다.

병인양요(1866년) 때 양현수 장군이 덕포진에서 염하를 도하할 때 강화의 관성진에 상륙하는 전초기지로 사용했다.

섬에 걸치는 낙조가 정말 아름답다. 낙조를 보기 위해 바다까지 떠내려왔으려나.

도움말: 사진 윤순영 (한국야생조류보호협회 이사장)

출처 : 김포신문(https://www.igimpo.com)

 

[김포의 역사를 찾아서19] 강 너머, 바다 너머 여기도 김포다 < 김포역사 < 기획 < 기사본문 - 김포신문 (igimpo.com)

 

[김포의 역사를 찾아서19] 강 너머, 바다 너머 여기도 김포다 - 김포신문

김포는 반도다. 강과 바다로 둘러싸였다. 김포 둘레길을 따라 걷다 보면 해가 뜨고 질 때, 시시각각 색을 달리하는 섬과 마주친다. 고촌에서 월곶까지 백마도, 홍도, 독도가 이어지고 강과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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