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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시덕의 도시 발견] 정치의 계절에 그린벨트를 생각한다
입력 : 2024-02-16 17:34:49 수정 : 2024-02-16 19:10:07
과거 군사·정치적 이유로 설정
정치권 택지개발 생색내며
일정 규칙 없이 해제하기 일쑤
개개인 재산권 훼손 비판도
선거 계기로 근본해결 논의를
4월 10일에 국회의원 선거가 치러진다.
총선을 앞두고 정치권을 포함한 사회 각계에서 여러 가지 근본적인 문제들이 던져지고 있다.
총선·대선 같은 정치적 이벤트는 이런 근본적인 문제를 던지기에 좋은 타이밍이다.
필자는 정치의 계절에 논의될 만한 근본적인 사안이 네 가지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로 한다'라고 규정한 헌법 3조, 국가보안법, 실제적인 한국 영토의 중심에 위치한 세종특별자치시로 수도를 옮기려고 한 노무현 정부의 신행정수도법에 대한 위헌 판결, 그리고 그린벨트 문제다.
그린벨트는 박정희 정부 때인 1971년에 도입됐다.
그린벨트 제도는 도시의 무한정한 확산을 막고 녹지 훼손을 보호하기 위해 실시된 것이다.
하지만 그 배경에는 각 도시의 범위를 정하고, 그린벨트 지역을 군사적 목적으로 사용하겠다는 박정희 정부의 의도도 깔려 있다.
산업 개발을 위해 환경 문제 제기를 억압하던 당시 정부가, 오로지 도시 스프롤 현상을 막고 환경을 보전하기 위해 그린벨트를 설정했다고 생각하기는 어렵다.
그린벨트는 군사적 용도뿐 아니라 정치적 목적으로도 설정됐다가 해제되고는 한다.
서울 강북의 철거민을 내보낼 목적으로 1969년에 경기도 광주군으로 십수만 명을 이주시키면서 광주대단지가 탄생했다. 하지만 현지의 열악한 상황에 분노한 시민들이 1971년 8월 10일에 봉기했고(광주대단지 사건), 정부는 1973년 성남시를 탄생시키면서 시민들의 불만을 달랬다.
일반적으로 알려져 있는 성남시의 탄생 과정은 여기까지이지만, 이로부터 3년 뒤인 1976년에 중요한 정책이 또 한 가지 실시됐음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1976년 박정희 정부는, 지금의 분당·판교를 포함한 성남시의 대부분을 '남단 녹지'로 설정했다.
성남시의 확장을 물리적으로 억제해 제2의 광주대단지 사건을 막고, 수도 남쪽 지역을 군사적 용도로 사용하기 위해서였다.
이렇게 군사적·정치적 이유에서 설정된 그린벨트는, 노태우 정부가 정치적 안정을 위해 1기 신도시 개발을 추진한 이래 지속적으로 그리고 일정한 규칙 없이 해제돼 왔다.
성남의 경우를 다시 예로 들면 동남부에 분당, 서남부에 판교, 그리고 이번엔 서북부의 금토동·시흥동처럼 마치 곶감 빼먹듯 차례로 해제되고 있다.
정부가 시민들에게 생색내기 위해 택지 개발을 하기 좋은 땅으로 그린벨트가 간주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분당과 마찬가지로 1기 신도시에 포함된 고양시 일산 신도시를 개발하던 때의 일이다.
일산 현지 토지주와 소작농들을 설득하기 위해 개최된 설명회에서 이런 실랑이가 있었다.
왜 하필 일산 지역을 대상지로 지목했는지 묻자, 정부 관계자가 "서울 주변에 이렇게 싼 땅이 없다"고 답했다.
이 말을 들은 주민들의 분노가 폭발했다.
정부가 그린벨트로 묶어 놓았으니 땅값이 싼 건데, 이제 와 가격이 싸다고 택지 개발을 한다는 게 말이 되느냐는 주장이었다.
이처럼 그린벨트 제도는 자본주의의 대원칙인 재산권을 정부가 앞장서서 훼손하는 데 사용돼 온 혐의가 크다.
그린벨트 내의 소유주가 행사해야 할 재산권을 묶어놓고, 그 차익으로 정부가 그린벨트 바깥 국민들에게 생색내 온 것이 1기 신도시 이래로 반복돼 왔다.
박정희 정권으로부터 이어진다고 할 수 있는 국민의힘 계열 진영뿐 아니라, 박정희 정권에 대한 반대 입장을 견지해온 민주당 계열 진영도 그린벨트를 해제해 택지를 조성한 것은 마찬가지였다.
그린벨트 내의 토지에 대한 개개인의 재산권을 정부가 편취하는 구조를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다.
현재의 그린벨트 구역 가운데 정말로 환경이 보전되고 있는 지역은, 그린벨트 제도가 아닌 국립공원 제도 같은 다른 법규로 보호하면 될 일이다.
여야 간뿐 아니라 당내에서도 합의를 이끌어내는 것이 점점 어려워지고 있는 한국의 정치적 상황에서, 이런 근본적인 문제들이 진지하게 논의될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사실은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회의원들이 관심을 갖는 경선이니 선거구제 개편 같은 문제들보다 훨씬 더 중요한 문제들이 한국 사회에는 존재하고 있음을 새삼 상기시키고자 이 글을 쓴다.
[김시덕 도시문헌학자]
[김시덕의 도시 발견] 정치의 계절에 그린벨트를 생각한다 - 매일경제 (m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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