ㆍ불평등의 기원 ‘땅’
서울 서초구에 사는 초등생 ㄱ군(10)은 영어·수학 학원도 다니지만 틈틈이 ‘소프트웨어(SW) 코딩’을 배워두고 있다. 강남의 학원 가운데는 수백만원짜리 해외 코딩캠프 상품도 운영한다. 어지간한 수도권 도시에서는 코딩 학원조차 보기 어려운데 서울 학생들은 미래 사회에 대비해 한발 앞서나가려 한다. 단지 유명 외국어고나 과학고, 자립형 사립고를 나와 내로라하는 대학 학벌을 따는 차원을 넘어서려는 것이다. 이런 학벌 계층화를 향한 정지작업은 적어도 초·중교부터 착착 진행된다.
이를 가능케 하는 조건은 단지 부모의 월급이 아니다. 대개는 강남을 비롯한 핵심지역에 위치한 거주지와 연관돼 있다. 바로 땅, 집 문제다. 현대판 신분사회를 굳히는 작용기제의 바탕에 부동산이 자리 잡고 있다.
고전 <인간불평등 기원론>(1755년)을 쓴 계몽사상가 장 자크 루소(1712~1778)는 일찍이 빈 땅에 울타리를 치면서 ‘소유’ 개념이 불거지고 불평등이 커졌다고 설파했다. 여기엔 ‘땅은 누군가의 전유물이 돼선 안된다’는 철학이 깔려 있다. 현대 자본주의 세상에 땅, 건물 소유 자체를 악으로 치부하거나 막을 순 없다. 다만 루소가 지적했듯 토지가 태생적으로 지닌 공개념을 재해석하려는 노력이 요구된다. 무엇보다 땅은 유한하기 때문이다. 인구 대비 비좁은 한국 사회라면 더 그렇다.
이른바 ‘헬조선’의 근저에도 일자리 문제와 함께 땅값, 집값 부담이 깔려있다. 결혼기피, 저출산 현상이 심화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은 지난해 말 ‘결혼·출산 행태 변화와 저출산 대책의 패러다임 전환’ 보고서에서 주택매매 가격과 전셋값이 오르면 혼인율과 출산율이 낮아진다고 분석했다. 지역 주택매매 가격과 주택매매 가격 대비 전세가 비율은 조혼인율(인구 1000명당 혼인비)과 합계출산율에 음(-)의 영향을 미쳤다. 특히 전셋값 상승이 합계출산율에 부정적 영향을 미쳤다.
주거환경이 신혼부부의 출산행태에 미치는 영향을 봤더니, 주거비가 부담되거나 주택 규모가 작으면 자녀 유무와 관계없이 추가 출산을 연기하지만, 자가 가구일 때는 추가 출산을 미루지 않을 가능성이 컸다. 자가인 경우 현재 자녀 수와 계획 자녀 수의 평균이 각각 1.20명, 1.86명으로 비자가에 비해 각각 0.17명, 0.06명 많았다. 국토연구원은 최근 국내 1인 가구 평균 주거 사용 면적은 48.6㎡로 영국(72.1㎡)의 67%, 미국(141.3㎡)의 35% 수준이라고 밝혔다. 특히 만 29세 이하 청년층 1인 가구 주거면적은 평균 30.4㎡이다. 9평을 겨우 넘는 공간이다. 사실상 통계에서 빠진 옥탑방과 고시원 같은 ‘비주택’에 사는 39만가구를 더하면 1인 가구 주거면적은 더 줄어든다.
또 청년층 1인 가구의 소득 대비 주택임대료 비율(RIR)은 2014년 기준 31%다. 전체 가구 평균(20.3%)보다 10.7%포인트 높은데, 100만원 벌어 31만원은 집세로 내야 한다. 평균 거주기간은 0.77년으로 9개월 남짓 살고 옮겨다녔다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