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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밭만 맡겨도 年 수천만원 받아… 전국 첫 ‘농지 배당’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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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밭만 맡겨도 年 수천만원 받아… 전국 첫 ‘농지 배당’

네잎클로버♡행운 2024. 2. 2. 1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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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밭만 맡겨도 年 수천만원 받아… 전국 첫 ‘농지 배당’

문경=노인호 기자 / 입력 2024.01.31. 03:00업데이트 2024.01.31. 08:32

 
지난해 6월 경북도가 실험에 들어간 ‘공동 영농’ 현장인 경북 문경시 영순면 논에서 이철우 도지사가 직접 트랙터를 몰며 손을 들어보이는 모습. 경북도는 70~80대 농민들 소유의 땅을 모아 대규모 경작으로 수익을 극대화하는 ‘공동 영농’을 도입했다./경북도

 

경북 문경시 영순면에서 50년 넘게 벼농사를 지어온 권준(77)씨. 작년 6월 직접 벼농사를 짓는 대신 자신의 땅 5800평을 영농조합에 맡겼다.

1년 뒤 최소 평당 3000원의 기본 배당금을 받고, 수익이 나면 추가로 이익 배당금을 받는 조건이었다.

권씨는 지난달 27일 조합에서 기본 배당금으로 1740만원을 받았다.

그는 “여기 대부분이 70~80대 노인이라서 농사지을 힘도 없다”며 “설마 했는데 일도 안 하고 농사지을 때만큼 돈벌이를 할 수 있는 이런 방법이 있으니 신기할 뿐”이라고 말했다.

권씨는 계약이 끝나는 6개월 뒤 한 번 더 배당금이 나오기를 기대하고 있다.

물론 수익이 나지 않으면 배당금은 없다.

전국에서 농업 인구가 가장 많은 경북 농촌에 새바람이 불고 있다.

70~80대 농민들 소유의 땅을 모아 대규모 경작으로 수익률을 극대화하는 ‘공동 영농’을 도입했다.

단순히 돈 받고 땅을 빌려주는 임대와는 다르다.

전문 농업 경영인들이 농사를 지어 수익을 남기고, 그 수익을 땅 주인들에게 배당하는 방식이다.

도시의 은퇴자들이 집을 담보로 매월 생활비를 빌려 쓰는 역모기지론과 비슷하지만, 투자하는 개념이어서 도시의 집처럼 땅을 잃지는 않는다.

권씨가 참여한 ‘문경 영순지구 주주형 공동 영농’ 사업은 작년 6월 시작했다.

벼농사를 했던 권씨의 땅 5800평에 콩을 심었다. 콩을 수확한 뒤 기본 배당금을 지급했고, 그 땅에 양파와 감자 농사를 지어 이익 배당금을 줄 예정이다.

2모작으로 농지 활용도를 높인 것이다. 권씨를 포함해 이웃 80농가가 참여했다.

이 사업은 경북도가 농업 대전환을 해보자며 앞장섰다.

경북도와 문경시가 14억원씩 지원하고, 농사를 맡은 늘봄영농조합이 7억원, 80농가가 110㏊(약 33만2700평)의 땅을 각각 투자했다.

농가에 책정된 기본 배당금은 9억9800만원으로, 농사 결과와 상관없이 확정된 금액이다. 이달 중 전액을 배당한다.

실제 농사는 젊은 귀농·귀촌인, 외국인 근로자 등이 주로 한다.

땅을 투자한 노인이라도 일을 하겠다면 일당을 준다.

다만 다른 일꾼(11만원)보다 적게(9만원) 책정했다.

자기 농기계를 가져와 일하면 하루 30만원도 준다.

직접 일은 안 해도 외국인 근로자들에게 농사를 가르치거나 근로 감독을 도와도 추가 수당을 지급한다.

주주 겸 일꾼으로 참여 중인 서모(73)씨는 “농작물은 농사꾼 발자국 소리를 듣고 자란다고들 하잖아.

돈이 문제가 아니라 콩이고 양파고 잘 자라는지 봐야지”라고 했다.

영농조합 대표 홍의식(59)씨도 이 지역에서 20년 이상 농사를 지어온 농민이다.

그는 “어르신들이 일을 하고도 ‘내 농산데 뭘 받느냐’며 (일당을) 사양해서 쌓인 돈이 수천만원 정도 된다”며 “나중에 정산해서 모두 나눠 드릴 예정”이라고 했다.

경북의 ‘공동 영농’은 이철우 경북도지사의 아이디어다. 그는 “갈수록 고령화돼 농촌이 곧 사라지게 생겼는데, 멍하니 두고 볼 수는 없지 않으냐”며 “평생 농사로 살아온 어르신들이 돈이 없어 땅 팔고 고향을 떠나게는 하지 말자는 각오로 이 사업을 추진했다”고 말했다.

경북의 농가 인구는 2010년 49만1225명에서 2022년 34만3741명으로 30% 넘게 줄었지만, 고령화로 65세 이상은 17만4129명에서 18만1960명으로 거꾸로 늘었다.

전체 농가 중 65세 이상 비율도 이 기간 35.4%에서 52.9%로 증가했다.

경북도 관계자는 “공동 영농에 참여한 80명 중 70세 이상이 45명이고, 최고령은 98세도 있다”며 “작년 말 배당금 지급 후 벌써 4명이 숨졌고, 2명이 위독하다.

이런 게 사업을 서둘러야 하는 이유”라고 했다.

돈 버는 농촌이 되면 청년들도 농사지으러 올 것이라고 경북도는 기대하고 있다.

문경 사업에도 20대 청년 2명이 참여 중이다.

경기 이천에서 온 강상목(29)씨는 대학에서 원예학을 전공하고, 2021년 문경으로 내려왔다.

초기엔 한국농어촌공사 농지은행에서 땅 3000평을 빌려 연 1000만원 정도 벌었는데, 지난해 문경 사업에 참여해 배당금과 일당을 합쳐 이미 2000만원 넘게 벌었다.

강씨는 “농사 배우는 학원에 돈을 받으면서 다니는 기분”이라며 “도시와 비교하면 적은 연봉이지만, 출퇴근이 자유롭고 농번기를 피해 2~3주씩 여유도 생겨 충분히 매력적인 직업”이라고 했다.

경북도는 올해부터 공동 영농 지역을 확대한다.

경주 외동읍과 상주 함창읍, 의성 안계면, 청도 각북면 4곳을 이미 예비 대상지로 정했다.

문경처럼 5억~10억원을 지원한다. 김주령 경북도 농축산국장은 “1996년 이후 농지를 취득한 사람은 법상 ‘자경 의무’ 때문에 이 사업에 참여할 수 없다”며 “법 개정을 통해 이런 규제가 풀리면 농촌에서도 충분히 성공하는 농사 모델을 만들 수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