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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운=준비+기회

그리스도인의 영적 신분(왕) 본문

성공을 향한 초보자 필독/성경말씀 묵상

그리스도인의 영적 신분(왕)

네잎클로버♡행운 2022. 9. 17. 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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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스도인의 영적 신분(왕)

   “한 사람의 범죄를 인하여 사망이 그 한사람으로 말미암아 왕 노릇 하였은즉 더욱 은혜와 의의 선물을 넘치게 받는 자들이 한분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생명 안에서 왕 노릇 하리로다.”(롬 5:17)

   우리는 지난 시간에 그리스도인의 다섯 가지 영적신분 중 자녀의 신분에 대해 나누었습니다. 우리 모두는 그리스도로 인해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으므로 하나님을 누리고 또한 하나님의 자녀로서 그 의무와 책임을 다 해야 할 줄로 믿습니다. 왜냐하면 이것을 아는 자들이 바로 오늘 나눌 왕의 권세를 가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실 이러한 일에 대한 본을 보이신 분이 바로 예수님이신데 예수님께서는 모든 것을 잃어버린 후에 모든 것을 얻으신 분이십니다. 예수님은 근본 하나님의 본체이셨으나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입고 세상에 오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며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을 높여 모든 족속으로 예수님 앞에 무릎을 꿇게 하셨고 모든 입으로 예수님을 주라 시인하게 하신 것입니다(빌 2:6~11).  

   그래서 주님은 또 요 12:25~26에서 이렇게도 말씀 하셨는데  “자기 생명을 사랑하는 자는 잃어버릴 것이요 이 세상에서 자기 생명을 미워하는 자는 영생하도록 보존하리라 사람이 나를 섬기려면 나를 따르라 나 있는 곳에 나를 섬기는 자도 거기 있으리니 사람이 나를 섬기면 내 아버지께서 저를 귀히 여기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를 통해볼 때 주님은 아버지를 위해 자신의 생명을 미워했기에 오히려 사셨고 아버지를 위해 종의 형체를 입으셨기에 오히려 왕이 되셨음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 의하면 그리스도인들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왕의 신분을 부여받았습니다. 그러므로 당연히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에 사는 날 동안 왕 으로서 살되 그리스도의 생명 안에서 왕 으로서의 삶을 살아야 옳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그리스도인들은 여전히 왕 노릇하지 못하고 여전히 죄의 종이요 물질의 종이며 육신의 종노릇을 하며 심지어 사탄의 종노릇을 하며 사는 걸까요? 그것은 크게 두 가지로 볼 수 있는데 그 첫째는 예수님처럼 자신을 잃어버리지 않았기 때문이요 둘째는 오직 하나님만을 왕으로 섬기지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의 초대 왕 사울은 하나님으로부터 버림을 받아 왕의 보좌에서 쫒김을 당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이유에 대해 “내가 사울을 세워 왕 삼은 것을 후회하노니 그가 돌이켜서 나를 좇지 아니하며 내 명령을 이루지 아니 하였음이니라”고 삼상 15:11에서 말씀하셨습니다. 사울은 자신을 위하느라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았으며 그러다보니 하나님을 왕으로 인정하여 섬기기를 싫어하였고 또한 그러므로 하나님께 묻지도 않는 사람이 되어버렸는데 다시 말해 그는 오직 자기 자신만을 위하고 사랑한 사람이었던 것입니다.

   그 결과 그는 왕의 자리에서 쫒겨나게 되었는데 이에 대하여 성경은 증거 하기를 “사무엘이 사울에게 이르되 왕이 망령되이 행 하였도다 왕이 왕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왕에게 명하신 명령을 지키지 아니 하였도다 그리하였더라면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위에 왕의 나라를 영영히 세우셨을 것이어늘 지금은 왕의 나라가 길지 못할 것이라 여호와께서 왕에게 명하신 바를 왕이 지키지 아니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그 마음에 맞는 사람을 구하여 그 백성의 지도자를 삼으셨느니라 하고”(삼상 13:13~14)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때 하나님께서는 사울을 폐하시고 다윗을 왕으로 세우시게 되었는데 하나님께서는 사울을 폐하시고 왜 다윗을 왕으로 삼으시며 또한 영원히 그 위를 보존 하시려고 하셨을까요? 그 이유는 다윗의 이런 말과 행동에서 잘 찾아볼 수 있습니다. 다윗이 이스라엘 모든 족속의 왕이 되어서 최초로 한 일은 하나님의 법궤를 옮겨오는 일이었는데 성경은 이에 대해 ”우리가 우리 하나님의 궤를 옮겨오자 사울 때에는 우리가 궤 앞에서 묻지 아니하였느니라“(대상 13:3)고 다윗의 행동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이는 다윗은 사울과 다르게 자신이 아닌 하나님을 섬기고 하나님께 묻는 자 였기 때문인데 다윗은 사울의 위가 폐하여지고 왜 하나님께서 그를 버리셨는지를 분명하게 알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것은 사울이 하나님을 묻지 않았기 때문인데 즉 사울이 하나님을 왕으로 삼지 않았기에 그가 이스라엘의 왕이 될 수 없었으며 또한 그 바탕에는 그가 자신을 위하느라 하나님을 순종하지 않았고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것보다는 오직 자기 자신의 유익만을 추구하였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를 왕의 위에서 쫓아내신 것입니다.

이처럼 이 사실을 분명히 알고 있었던 다윗은 모든 일을 자신의 유익을 위해서 행치 않고 오직 하나님의 뜻을 묻고 순종하였으며 언제나 하나님을 왕으로 삼아 그를 복종하는 삶을 살았던 것입니다. 그렇기에 하나님께서는 그를 기뻐하셨고 그로 이스라엘의 왕으로 삼으시고 그의 위를 영원히 보존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이에 대하여 말씀 하시기를 “사무엘이 가로되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제사를 그 목소리 순종하는 것을 좋아하심같이 좋아하시겠나이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이는 거역하는 것은 사술의 죄와같고 완고한 것은 사신 우상에게 절하는 죄와 같음이라 왕이 여호와의 말씀을 버렸으므로 여호와께서도 왕을 버려 왕이되지 못하게 하셨나이다”(삼상15:22~23). 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이 왕 노릇하기 위해서는 먼저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일을 멈추어야 합니다. 비록 그에게 산을 옮길만한 믿음이 있다고 해도 여전히 자신을 사랑하는 일을 멈추지 않으면 그는 사람의 종이 되고 물질의 종이 되어 계속 사탄의 종노릇을 할 수밖에 없고 육신의 종노릇을 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될 줄 믿습니다.

   또한 우리가 왕으로 살지 못하는 한 가지 이유가 또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오직 하나님을 왕으로 섬겨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오직 한분 하나님을 왕으로 섬겨야합니다. 그러나 만일 하나님을 왕으로 섬기지 않고 그를 순종치 아니한다면 우리는 세상을, 마귀를, 죄를, 자신을, 다스릴 수 있는 그 어떠한 권세도 얻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는 바벨론에 의해서 포로로 잡혀가서 그 나라의 왕 느부갓네살을 섬기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느부갓네살을 섬긴 것은 오직 하나님의 뜻에 의한 순종이었지 느부갓네살의 권위에 굴복해서는 아니었습니다. 그러므로 느부갓네살이 자신을 위하여 금으로 신상을 만들고 이에 절하도록 강요하였을 때 그들은 절대로 그 신상에 절을 할 수 없었습니다. 오히려 그들은 말했습니다. “느부갓네살이여 우리가 이 일에 대하여 왕에게 대답할 필요가 없나이다. 만일 그럴 것이면 왕이여 우리가 섬기는 우리 하나님이 우리를 극렬히 타는 풀무가운데서 능히 건져내시겠고 왕의 손에서도 건져내시리이다.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왕이여 우리가 왕의 신들을 섬기지도 아니하고 왕의 세우신 금신상에게 절하지도 아니할줄 아옵소서”(단 3:16~18)

   그들의 대답에서 우리는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가 과연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들이며 그들이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이 아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기에 그들은 과연 왕의 권세를 가진 사람들 이었습니다. 결국 느부갓네살의 권세도 죽음도 그들을 굴복시킬 수 없었고 오직 하나님만이 그들을 다스릴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는 신약의 베드로의 경우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베드로가 처음에 자신을 사랑하였을 때에는 그는 사람들 앞에서 예수님을 부인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는 죽어도 주님을 버리지 않겠다고 예수님께 맹세하였으나 정작 그에게 시험이 닥쳐왔을 때 예수를 전혀 알지 못한다고 부인하는 부끄럽고 비굴한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그러나 그 베드로가 후일에 헤롯이 그를 죽이려고 옥에 잡아 가두었을 때에는 내일이면 사형장에서 죽을 목숨인 그 밤에 옥에 갇혀서 쇠사슬에 매였음에도 그는 깊이 잠들어 있을 수가 있었는데 이것은 도대체 어찌된 일입니까?

   베드로는 하나님께서 자신을 능히 살려낼 것으로 믿었기에 깊이 잠이 들 수 있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같은 사도인 요한의 형제 야고보는 이미 헤롯의 칼에 의해 순교를 당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야고보는 죽게 내버려두셨지만 자신은 살려주실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일방적인 믿음일 뿐이며 맹목적이며 이기적이고 근거 없는 얕은 믿음에 불과한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따라서 베드로가 하나님께서 자신을 지켜주실 것이라는 믿음으로 깊은 잠을 잘 수 있었다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그렇다면 베드로는 어떻게 죽음을 앞두고 그리 평안히 잠을 잘 수 있었을까요? 그렇습니다. 그는 전에는 자신을 사랑하여 주님을 배신했지만 이제 그는 주님을 왕으로 모시게 되었기에 주님을 위하여 죽을 수 있는 사람이 된 것입니다. 그가 이처럼 자기 자신을 향한 사랑을 멈추고 하나님을 왕으로 섬기게  되었을 때에 헤롯도, 죽음도, 칼도, 그 무엇도 그를 굴복시킬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는 오직 한분 예수 그리스도를 왕으로 섬김으로서 생명 안에서 왕노릇하게 된 줄로 믿습니다. 할렐루야!

   묻겠습니다. 하나님께서 나의 아버지이시므로 나를 사랑하시고 나를 도우실 것이라는 확신이 당신에게 있습니까? 그렇다면 참으로 감사한 일입니다. 그러나 그렇지 못하여 여전히 근심과 두려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니겠지요? 사랑하는 여러분 혹 평안과 기쁨이 당신의 심령안에 없고 여전히 환경의 영향을 받고 사람의 영향을 받고 있다면 어쩌면 당신은 생각하기를 자신이 예수님에 대한 믿음이 없기 때문일 거라고 생각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당신은 이미 하나님이 나의 참 아버지이며 내가 그의 자녀라는 사실을 깊게 믿고 있지 않습니까? 그러므로 당신이 지금 여전히 환경과 사람의 영향을 받고 있는 것은 사실은 자신을 사랑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주님만 당신의 왕 노릇하는 것이 아니요 여전히 환경을 의지하고 사람을 의지하고 있는 까닭입니다. 이제 자기 사랑을 멈추고 오직 한분 하나님만 왕으로 삼기를 기뻐하십시요 그리하면 당신은 생명 안에서 왕 노릇하는 놀라운 누림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 모두 그리스도의 생명 안에서 나를, 세상을, 죄를, 마귀를 다스리는 진정한 왕으로서의 삶을 살게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