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운=준비+기회
요한복음 20:11~17 본문
말씀묵상나눕니다 ~
요한복음 20:11~17
시작기도
부활의 주님을 송축합니다. 내 영혼이 주님을 사모합니다. 주님께로 더 가까이 다가 가기를 기도합니다. 제 눈을 열어 주셔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며 동시에 우리와 함께 역사하시는 주님을 온전히 알기를 원합니다.
본문이해와 나의 묵상
예수님의 부활을 최초 목격한 사람은 막달라 마리아 라고 요한은 기록한다. 그런데 마리아는 예수님은 죽은 줄로만 알고 무덤 밖에 서서 울고 있었다. 그때 천사가 “여자여 왜 우느냐?” 라고 말했다. 예수님도 울고 있는 마리아에게 “여자여, 왜 울고 있느냐? 누구를 찾느냐?” 말씀하셨다. 어쩌면 우리도 이 여인처럼 울고 있는지 모른다. 우리의 삶에서 발생하는 크고 작은 고난과 아픔 때문에 주님이 어디에 있느냐고 울고 있다. 주님의 부활과 우주의 통치자가 되심을 믿지 못하면 두려움과 슬픔 가운데 살 수 밖에 없다. 소망이 없으니까…
그런데, 예수님은 ‘마리아야!’ 라고 부르셨다. 그때야 비로소 마리아는 예수님을 알아보고, ‘선생님!’이라고 불렀다. 처음에 마리아는 천사와 예수님을 못 알아보고 동산지기인 줄로 알았다. 그런데, 영안이 열리면서, 예수님을 알아 보게 되었다. 그때 예수님은 마리아에게 “내게 손을 대지 말아라. 내가 아직 아버지께로 올라가지 않았다. 이제 내 형제들에게 가서 이르기를, 내가 나의 아버지 곧 너희의 아버지, 나의 하나님 곧 너희의 하나님께로 올라간다고 말하여라.”
예수님의 부활 장면을 기록한 사복음서를 자세하게 살펴보면, 예수님의 부활을 목격했던 사람들의 공통점은 처음에는 예수님을 알아 보지 못했고, 믿지도 않았다는 점이다. 왜 부활하신 예수님을 알아 보지 못했을까? 왜 부활하신 예수님을 보고도 믿지 못했을까? 그 이유에 대해서 마가는 이렇게 대답한다. “그 뒤에 그들 가운데 두 사람이 걸어서 시골로 내려가는데, 예수께서는 다른 모습으로 그들에게 나타나셨다(After that he appeared in another form unto two of them, as they walked, and went into the country<막16:12>). 부활하신 예수님은, 다른 모습으로 그들에게 나타나셨기 때문에 제자들은 예수님을 알아 보지 못했던 것이다. 심지어 엠마오 도상의 제자들은 자기들에게 말을 거는 예수님의 음성을 듣고도 알아채지 못했다. 음성도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요한복음 21장에서 갈릴리 바다가에 나타나신 예수님 ‘그물을 배 오른편에 던지라 그리하면 잡으리라’ 제자들에게 말씀했는데, 듣고 순종하자 물고기가 많아 그물을 들 수 없었다. 그때야 비로소 요한은 예수님을 알아보고 베드로에게 ‘주님이시다’라고 말했다. 처음에는 제자들은 예수님인 줄 몰랐다가 나중에 알아챘다.
사도바울은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하신 주님을 만났을 때, 누구냐고 물었다가 나중에야 주님이신 줄 알았다. 요한계시록에 보면, 인자의 모습은 완전히 다른 부활체의 모습을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요20:19, 26을 보면 예수님이 문 잠근 상태에서 들어 오신다. 이처럼 부활체의 몸을 가진 예수님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다. 마가복음 16:19~20을 보면, 부활의 주님은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면서, 동시에 제자들이 복음을 전할 때, 함께 역사하신다. 부활체를 가진 주님은 살과 뼈가 존재하지만, 시공을 초월한다.
이처럼 우리가 믿는 예수님은, 부활의 몸을 가진 부활 주이시다. 사복음서의 저자가 말하고 싶은 핵심은, 예수님께서는 사람으로 탄생하셨고, 대속의 죽음을 이루셨고, 부활하셔서 지금도 통치하시는 부활의 주님이라는 것이다. 성경 전체적으로 볼 때, 구약은 말씀으로 존재하신 예수님이 오실 것에 대한 예언을 담고 있고, 신약은 사복음서에서 마지막 1장을 빼고 나면 인자로 오신 예수님에 대한 기록이고, 사복음서의 각각 마지막 1장(요한복음은 20장과 21장)과 신약 전체는 부활의 주님에 대해서 기록하고 있다. 즉, 예수님께서 부활하심으로 승리했다는 것을 기록하고 있다.
창세기 3장에 뱀 머리를 깬 것은 승리를 의미한다. 그래서 예수님을 믿는 자는 생명의 부활로 예수님과 같은 부활을 경험한다. 반면, 예수님을 믿지 않는 자는 심판의 부활로, 공간과 시간의 제약을 받고, 불 심판을 피하지 못하고, 욕된 몸으로 영원히 살게 된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것이다. 창세 전에 하나님과 함께 계신 하나님, 말씀으로 존재하신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와 죽음의 문제를 대속하기 위해 육신으로 오셨다. 이제는 대속을 이루고 부활하신 후에는 부활의 주님으로 우리와 함께 하시는 분이시며 지금도 통치하시는 왕이시다.
나는 예수님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있는가? 예수님께서 이루신 우주적인 구원 사건을 잘 이해하고 알고 있는가? 지금은 부활의 주님으로 세상을 통치하고 있는 것을 알고 있는가? 세상은 예수님을 조롱하고 그리스도인들을 싫어하고 미워하지만, 분명한 것은 예수님이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셨고, 대속을 이루셨다는 것을 기억하자.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예수가 그리스도’이시며 부활하셨다는 것을 증거하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 믿는 자에게 성령의 충만을 주신다. 그러므로 날마다 성령 충만함을 구하자. 그래야 부활의 증인으로 살 수 있기 때문이다.
실천과 묵상기도
주님~ 이 아침에 성령 충만하기를 기도합니다. 그래서 부활의 증인으로 살 수 있도록 용기와 믿음과 지혜를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예수가 그리스도이시며 부활의 주님이신 것을 증거하는 삶을 살 수 있도록 인도해 주세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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